천년 후에

2018. 9. 23. 01:24





Posted by 은산철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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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그렇게 따뜻하고 눈물이 나올만큼 나를 아껴줬던 사람입니다.
우리 서로 인연이 아니라서 이렇게 된거지
눈 씻고 찾아봐도 내게는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따뜻한 눈으로 나를 봐줬던 사람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눈빛이 따스했는지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살아도
이 사람은 이해해주겠구나 생각 들게 해주던
자기 몸 아픈 것보다 내 몸 더 챙겼던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사랑해 주었던 사람입니다.
내가 감기로 고생할 때 내 기침소리에 그 사람 하도 가슴 아파해
기침 한 번 마음껏 못하게 해주던 그런 사람입니다.

지금 그 사람,
나름대로 얼마나 가슴 삭히며 살고 있겠습니까?
자기가 알텐데, 내가 지금 어떻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수 없을텐데

언젠가 그 사람, 이런 얘길 한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멀이 있어야 한다고, 멀리 있어야 아름답다고..
웃고 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모릅니다.
내가 왜 웃을 수 없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과 하두 웃어서, 너무 너무 행복해서
몇 년치 웃음을 그때다 웃어버려서
지금 미소가 안 만들어 진다는걸
웃고 살라고 애기 하는 사람들은 모릅니다.

인연이 아닐뿐이지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그 사람 끝까지 나를 생각해 주었던 사람입니다.
마지막까지 눈물 안보여 주려고 고갤 숙이며 애길하던 사람입니다.

탁자에 그렇게 많은 눈물 떨구면서도 고개 한번 안 들고
억지로 또박또박 얘기해주던 사람입니다.
울먹이며 얘기해서 무슨 얘긴지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사람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알수있게 해주던 사람입
니다.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그렇게 따뜻하고 눈물이 나올만큼 나를 아껴줬던 사람입니다.
우리 서로 인연이 아니라서 이렇게 된거지
눈 씻고 찾아봐도 내게는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인연이 아닐 뿐이지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정말 내게는 그런 사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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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은산철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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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 / 은산철벽

2016. 4. 15. 12:21

 

 

오늘도 당신을 닮은 허브가 잘 자라고 있습니다.

 

 

가을 햇볕이 참 좋아서인지 고맙게도 별 탈 없이 잘 자라주었습니다.

 


물도 알맞게 주고, 햇볕도 부족하지 않게 쬐어 주려고 노력 꽤나 했으니까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길을 지나가다

길가에 놓여진 허브가 꼭 당신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사버렸습니다.
꽃 같은거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어서 덜컥 겁도 났지만,

 

 

당신을 닮은 허브라면

왠지 잘 키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키우는 허브는 적당히 물만 주고 햇볕이 드는 창가에 두면 잘 자랍니다.

 

 

하지만 난 당신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어쩔 수가 없나봐요.
항상 그리워하고,

바라만 보고,

늘 보고 싶어 하는데

정작 당신은 너무 멀리 있으니까요.

 

오늘도 당신을 향한 내 마음 대신

당신을 닮은 허브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더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 하며 썼던 낡은 글이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을 그리며 다시 꺼내봅니다.

 


이미지 도움

Alice Henneman - lavender from my herb garden
Alice Henneman - Rosemary from my herb garden
Alice Henneman - Sage from my herb garden
https://www.flickr.com/photos/alicehenneman/


Chiot's Run - Stocking the Herb Pantry
https://www.flickr.com/photos/chiotsrun/


Dan Malec - Raised Herb Bed
https://www.flickr.com/photos/7272988@N03/


Maggie Hoffman - they remind me of hairstyles
https://www.flickr.com/photos/maggiejane/


Maureen Didde - Basil
https://www.flickr.com/photos/maureendidde/


Misha - Mah Herbs
https://www.flickr.com/photos/50387020@N00/


Nathan Borror - Growing some herbs
https://www.flickr.com/photos/sketch22/


Sean Lamb - A dozen Herbs
https://www.flickr.com/photos/slambo_42/

Posted by 은산철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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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에 반한 사랑
                비스와봐 쉼보르스카

그들은 둘 다 믿고 있다.
갑작스런 열정이 자신들을 묶어 주었다고.
그런 확신은 아름답다.
하지만 약간의 의심은 더 아름답다.

그들은 확신한다.
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기에
그들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고.
그러나 거리에서, 계단에서, 복도에서 들었던 말들은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수만 번 서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기억하지 못하는가.
어느 회전문에서
얼굴을 마주쳤던 순간을.
군중 속에서 '미안합니다' 하고 중얼거렸던 소리를.
수화기 속에서 들리던 '전화 잘못 거셨는데요' 하는 무뚝뚝한 음성을.
나는 대답을 알고 있으니
그들은 정녕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놀라게 되리라.
우연이 그토록 여러 해 동안이나
그들을 데리고 장난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면.
그들의 만남이 운명이 되기에는
아직 준비를 갖추지 못해
우연은 그들을 가까이 끌어당기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들의 길을 가로막기도 하고
웃음을 참으며
훨씬 더 멀어지게도 만들었다.

비록 두 사람이 읽지는 못했으나
수많은 암시와 신호가 있었다.
아마도 3년 전,
또는 바로 지난 화요일,
나뭇잎 하나 펄럭이며
한 사람의 어깨에서 또 한 사람의 어깨로 떨어지지 않았던가.
한 사람이 잃어버린 것을 다른 사람이 주웠었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그것이
유년 시절의 덤불 속으로 사라졌던 공일지도.

문 손잡이와 초인종 위
한 사람이 방금 스쳐간 자리를
다른 사람이 스쳐가기도 했다.
맡겨 놓은 여행 가방이 나란히 서 있기도 했다.
어느 날 밤, 어쩌면, 같은 꿈을 꾸다가
망각 속에 깨어났을지도 모른다.

모든 시작은
결국에는 다만 계속의 연장일 뿐
사건들의 책은
언제나 중간에서부터 펼쳐지는 것을.

Posted by 은산철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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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은 없다

                                    비스와봐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Posted by 은산철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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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 지붕에 대하여

                                        안도현

양철 지붕이 그렁거린다, 라고 쓰면
그럼 바람이 불어서겠지, 라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삶이란,
버선처럼 뒤집어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나는 수없이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이었으나
실은, 두드렸으나 스며들지 못하고 사라진
빗소리였으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절실한 사랑이 나에게도 있었다

양철 지붕을 이해하려면
오래 빗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맨처음 양철 지붕을 얹을 때
날아가지 않으려고
몸에 가장 많이 못자국을 두른 양철이
그놈이 가장 많이 상처입고 가장 많이 녹슬어 그렁거린다는 것을
너는 눈치채야 한다

그러니까 사랑하다는 말은 증발하기 쉬우므로
쉽게 꺼내지 말 것
너를 위해 나도 녹슬어가고 싶다, 라든지
비 온 뒤에 햇볕 쪽으로 먼저 몸을 말리려고 뒤척이지는 않겠다, 라든지
그래, 우리 사이에는 은유가 좀 필요한 것 아니냐?

생각해봐
한쪽 면이 뜨거워지면
그 뒷면도 함께 뜨거워지는 게 양철 지붕이란다

Posted by 은산철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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